후기게시판
2025.03.25 20:18
고덕에서, 정치를 배운다.
- 반노 27일 전 2025.03.25 20:18 KEY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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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공구장님은 귀엽다.
키도 작고 참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남들이 볼 땐 분명 나와 같은 느낌은 아닐 거다.
무려 20년 이상 반도체 현장에서 근무를 하셨다.
분명히 20년 전의 건설 현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빡세고 힘든 곳이었으리라.
그런 곳에서 키 155가 될까 싶은 어리고 젊은 여성이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강해졌어야 했을까?
20년 후 현재, 임시 공구장님은 입에 욕을 달고 사신다.
정말 모든 말을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신다.
지금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데 같이 한 달을 지내보니, 누구보다 연약하다.
분명 내가 느끼는 여린 면이, 20여 년 전 현장에 오기 전 성격이겠지 짐작한다.
그걸 느끼고 나면, 참 사람으로서 귀엽고 연약해 보인다.
그런 점이 가장 많이 드러날 때가 있다.
바로 누군가 필요한 게 생겼을 때다.
그 누군가가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정말 어떻게든) 구해다 주신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펜 하나를 곱게 받지 못한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작업자 중, 임시공구장님께 미움을 받는 사람은, 펜 하나 받으러 가는 게 그날 중 가장 힘든 일이었으리라.
나는 다행히 별로 한 일이 없음에도 임시공구장님께 예쁨 받는 사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식적인 사람들을 예뻐하는 것 같다.
인사하고, 고마워하고,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고, 회사 물건을 자기 물건처럼 아껴서 사용하는 그런 상식이랄까?
하여간, 이 임시공구장님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첫 총괄팀장을 데려온 사람이 바로 임시공구장님 이었기 때문이다.
총괄팀장을 데려올 당시에는, 분명 그 사람은 임시공구장님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 첫 번째 총괄팀장님은 사무적인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 총괄팀장과 일하는 한 달 좀 안되는 시간 동안, TBM을 포함해서 거의 본 적이 없다. 한두 번 봤지 싶다.
얼핏 듣기로는 바로 얼마 전까지 공무(사무일) 직을 수행하다 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싶다.
전체적으로 팀을 현장 팀장님들한테 전적으로 맡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인 리더는 3차 업체의 제일 짬 많은 팀장님이셨다.
전체 TBM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4차 업체 현장팀장님을 별거 아닌 것들로 갈구곤 했다.
당시에 현장 경험이 적었던 나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나이가 더 어려 보이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사람을 갈구기에
직급 차이인가 하고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3차 하청업체가 4차 업체를 상대로 한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만연한 만큼 현장 상황은 개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현장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체가 팀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2차 직영, 3차 업체, 4차 업체 모두 분명하게 구분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점은 3차 업체가 직영팀보다도 갑인 느낌이었다.
샵장엔 언제나 노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은 있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잘못된 밴딩(스틸 배관을 도면에 맞게 꺾는 작업)으로 버려진 배관들이 하루하루 쌓여만 갔다.
나는 2~3일에 한번은 폐기하기 위해 그 배관들을 짧게 자르는 일을 하며, 임시공구장님이 배관사들 욕하는 걸 들었다.
임시 공구장님 말을 빌리자면 한두 명의 배관사들 말고는 모두 일을 더럽게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배관사가, 공구를 달라며 임시공구장님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마도 공구장님이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계약상 어쩌고저쩌고 그랬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건 그 상황에 3차 업체 팀장 중 한 명이 그 배관사 편을 들며 임시공구장님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말과 고성이 오가며 상황이 더 안 좋아질 무렵, 임시 공구장님의 따님이 나섰다.(고덕의 업체들은 가족경영이 만연하다.)
"야, 닥치고 꺼져." 정도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스물 중반쯤 된 당돌한 친구였다.
뭐, 스무 살쯤 어린 팀장도 공구장님께 목소리를 높였으니 사실 그쪽도 할 말은 없을 거다.
그리고 점심이 지나서 갑자기 모든 일이 멈췄다.
정말 그대로 멈췄다.
3차 업체 팀장들은 팀원들을 이끌고 점심 이후 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사다리 등 자신들이 가져온 모든 공구를 빼겠다며 협박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샵장에 남아있었다. 돈 벌어야 하니까.
그리고 다음 날,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는 아니고..
원청 업체의 관리자가 나섰다.
2차와 3차사를 중재하려고 했지만 잘 되진 않은 것 같았다.
외려 3차사에 힘을 실어준 느낌이 강했다.
알고 보니 3차사의 대표가 총괄팀장이었다.
총괄팀장은 공무 출신이라서 그런지, 원청과의 대응이 아주 부드러웠을 것이다.
그에 반해 임시 공구장님은 특유의 센 성격으로 입지가 줄어들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임시공구장님으로부터 총괄팀장에 대한 욕을 쉬지 않고 들었다.
솔직히 엄청 속상하셨을 것 같다.
믿고 총괄로 불렀는데, 배신을 한 격이다.
겨우 며칠 후, 3차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그냥 떨어져 나간 건 아니고 2차사의 자격으로 분리가 되어 나갔다.
새로운 샵장을 만들고 그들만의 공사가 이어졌다.
2차사였던 우리 쪽 공사 물량도 대거 가지고 갔다.
갑을이 뒤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갑이 무너졌다.
그리고 4차사였던 내 업체도 얼마 못 가 떨어져 나갔다.
2차사의 TO 인원을 3차사였던 업체에 밀어주는 바람에,
인원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는 세 업체에 다 잘 보여놔서(그냥 인사만 잘했을 뿐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입장에 놓였다.
난감했지만, 결국 한 달 동안 함께했던 공구장님에게 가기로 했다.
당시엔 원청이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왠지 낭만을 지키고 싶었다. 의리 말고 낭만.
참고로, 나는 이 중에 내가 속했던 4차사 팀의 팀장님께 배운 점이 참 많았다.
3차사 팀장의 갈굼에도 아무 대응 안 하셨고,
분명 화가 날 상황이 많았고, 화가 나 보였음에도 침착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인간적으로 참 좋은 분이다 싶었다.
모두를 자기 동생들처럼 대하던 기억이 난다.
참 자리 잡으면 국밥을 사드리기로 했는데.. 곧 연락드려야겠다.
뭐 결국엔 모두를 떠나보내고, 3차사가 떠나기로 한 그날.
새로운 두 번째 총괄팀장이 TBM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2주 만에 또 떠나야 했다.
그가 떠난 이유는 아직도 협력업체 사무실에서 간혹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분이 떠나야 한 이유는 다음 글에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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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작고 참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남들이 볼 땐 분명 나와 같은 느낌은 아닐 거다.
무려 20년 이상 반도체 현장에서 근무를 하셨다.
분명히 20년 전의 건설 현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빡세고 힘든 곳이었으리라.
그런 곳에서 키 155가 될까 싶은 어리고 젊은 여성이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강해졌어야 했을까?
20년 후 현재, 임시 공구장님은 입에 욕을 달고 사신다.
정말 모든 말을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신다.
지금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데 같이 한 달을 지내보니, 누구보다 연약하다.
분명 내가 느끼는 여린 면이, 20여 년 전 현장에 오기 전 성격이겠지 짐작한다.
그걸 느끼고 나면, 참 사람으로서 귀엽고 연약해 보인다.
그런 점이 가장 많이 드러날 때가 있다.
바로 누군가 필요한 게 생겼을 때다.
그 누군가가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정말 어떻게든) 구해다 주신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펜 하나를 곱게 받지 못한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작업자 중, 임시공구장님께 미움을 받는 사람은, 펜 하나 받으러 가는 게 그날 중 가장 힘든 일이었으리라.
나는 다행히 별로 한 일이 없음에도 임시공구장님께 예쁨 받는 사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식적인 사람들을 예뻐하는 것 같다.
인사하고, 고마워하고,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고, 회사 물건을 자기 물건처럼 아껴서 사용하는 그런 상식이랄까?
하여간, 이 임시공구장님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첫 총괄팀장을 데려온 사람이 바로 임시공구장님 이었기 때문이다.
총괄팀장을 데려올 당시에는, 분명 그 사람은 임시공구장님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 첫 번째 총괄팀장님은 사무적인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 총괄팀장과 일하는 한 달 좀 안되는 시간 동안, TBM을 포함해서 거의 본 적이 없다. 한두 번 봤지 싶다.
얼핏 듣기로는 바로 얼마 전까지 공무(사무일) 직을 수행하다 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싶다.
전체적으로 팀을 현장 팀장님들한테 전적으로 맡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인 리더는 3차 업체의 제일 짬 많은 팀장님이셨다.
전체 TBM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4차 업체 현장팀장님을 별거 아닌 것들로 갈구곤 했다.
당시에 현장 경험이 적었던 나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나이가 더 어려 보이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사람을 갈구기에
직급 차이인가 하고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3차 하청업체가 4차 업체를 상대로 한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만연한 만큼 현장 상황은 개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현장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체가 팀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2차 직영, 3차 업체, 4차 업체 모두 분명하게 구분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점은 3차 업체가 직영팀보다도 갑인 느낌이었다.
샵장엔 언제나 노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은 있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잘못된 밴딩(스틸 배관을 도면에 맞게 꺾는 작업)으로 버려진 배관들이 하루하루 쌓여만 갔다.
나는 2~3일에 한번은 폐기하기 위해 그 배관들을 짧게 자르는 일을 하며, 임시공구장님이 배관사들 욕하는 걸 들었다.
임시 공구장님 말을 빌리자면 한두 명의 배관사들 말고는 모두 일을 더럽게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배관사가, 공구를 달라며 임시공구장님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마도 공구장님이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계약상 어쩌고저쩌고 그랬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건 그 상황에 3차 업체 팀장 중 한 명이 그 배관사 편을 들며 임시공구장님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말과 고성이 오가며 상황이 더 안 좋아질 무렵, 임시 공구장님의 따님이 나섰다.(고덕의 업체들은 가족경영이 만연하다.)
"야, 닥치고 꺼져." 정도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스물 중반쯤 된 당돌한 친구였다.
뭐, 스무 살쯤 어린 팀장도 공구장님께 목소리를 높였으니 사실 그쪽도 할 말은 없을 거다.
그리고 점심이 지나서 갑자기 모든 일이 멈췄다.
정말 그대로 멈췄다.
3차 업체 팀장들은 팀원들을 이끌고 점심 이후 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사다리 등 자신들이 가져온 모든 공구를 빼겠다며 협박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샵장에 남아있었다. 돈 벌어야 하니까.
그리고 다음 날,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는 아니고..
원청 업체의 관리자가 나섰다.
2차와 3차사를 중재하려고 했지만 잘 되진 않은 것 같았다.
외려 3차사에 힘을 실어준 느낌이 강했다.
알고 보니 3차사의 대표가 총괄팀장이었다.
총괄팀장은 공무 출신이라서 그런지, 원청과의 대응이 아주 부드러웠을 것이다.
그에 반해 임시 공구장님은 특유의 센 성격으로 입지가 줄어들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임시공구장님으로부터 총괄팀장에 대한 욕을 쉬지 않고 들었다.
솔직히 엄청 속상하셨을 것 같다.
믿고 총괄로 불렀는데, 배신을 한 격이다.
겨우 며칠 후, 3차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그냥 떨어져 나간 건 아니고 2차사의 자격으로 분리가 되어 나갔다.
새로운 샵장을 만들고 그들만의 공사가 이어졌다.
2차사였던 우리 쪽 공사 물량도 대거 가지고 갔다.
갑을이 뒤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갑이 무너졌다.
그리고 4차사였던 내 업체도 얼마 못 가 떨어져 나갔다.
2차사의 TO 인원을 3차사였던 업체에 밀어주는 바람에,
인원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는 세 업체에 다 잘 보여놔서(그냥 인사만 잘했을 뿐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입장에 놓였다.
난감했지만, 결국 한 달 동안 함께했던 공구장님에게 가기로 했다.
당시엔 원청이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왠지 낭만을 지키고 싶었다. 의리 말고 낭만.
참고로, 나는 이 중에 내가 속했던 4차사 팀의 팀장님께 배운 점이 참 많았다.
3차사 팀장의 갈굼에도 아무 대응 안 하셨고,
분명 화가 날 상황이 많았고, 화가 나 보였음에도 침착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인간적으로 참 좋은 분이다 싶었다.
모두를 자기 동생들처럼 대하던 기억이 난다.
참 자리 잡으면 국밥을 사드리기로 했는데.. 곧 연락드려야겠다.
뭐 결국엔 모두를 떠나보내고, 3차사가 떠나기로 한 그날.
새로운 두 번째 총괄팀장이 TBM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2주 만에 또 떠나야 했다.
그가 떠난 이유는 아직도 협력업체 사무실에서 간혹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분이 떠나야 한 이유는 다음 글에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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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글여우와, 어린 수사자202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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