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게시판

2025.03.24 17:21

방진복, 샵장 대기

  • 반노 오래 전 2025.03.24 17:21 KEY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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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다만, 과거엔 인식하지 못했다.



이곳에서도, 도착하자마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몇 살 인가 어린 동생과, 몇 살 인가 많은 형.



우리 셋은 숙소에서 처음 만났다.

셋 다 성격이 극 I인데다, 술을 안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 서로 개인 공간과 개인 시간을 완전히 존중해 준다.

(주말엔 거의 만나지 않는다. 아.. 생각해 보니 평일에도 딱히...)



뭔가 각자에게 있는 지켜야 할 선을 침범하지 않다 보니, 아직까지도 붙어 다니는 게 아닐까 싶다.

(여러 이유로, 다들 숙소를 나가 방을 잡고 살지만 일 끝나고 PC방을 갈 때는 꼭 함께다.. 붙어 다니는 게 맞나..?)





첫 출근은 동생이 제일 먼저 하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한 건 내가 가장 처음인데, 교육이 밀려서 내가 며칠 뒤에 형과 함께 출근하게 되었다.







물산에서 출근할 때와는 달리 전자직발 출근 시에는 내방카드를 매일 아침 발급받아야 한다.

(일정 기간 출근 시 장기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업체에 따라 일주일 단기 출입증도 있다.)



처음 오는 신입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내방카드를 신청했다.

(신분증, MDM 앱, 재직증명서 필수)





그리고 안내역을 맡으신 공무님을 따라 '임시스막'으로 향했다.

FAB (삼성 반도체 공장; Fabrication의 약자로 제조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공장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말이 공장이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15~20층 건물 대 여섯 개가 붙어 있는 느낌이랄까..



칸막이로 일할 때는 볼 수 없던 건물의 완성된 풍경이 펼쳐졌다.

반도체 설비들이 줄을 맞춰 설치되어 있고, 모든 것이 깨끗했다.

온종일 켜져 있는 에어컨과 공기 청정 시설은,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곳의 의지가 보였다.

내가 벽을 붙이고 천장을 붙이던 곳이 이렇게 완성된다는 것에 경의로움과 신기함이 느껴졌다.



모든 층이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phase 2를 진행하던 시기였는데, 그래서인지 임시스막이 있던 4층은

물산 업체들과 직발 업체들이 함께 일하는 구역이었다.



임시스막은 그야말로 간이 탈의실 구역이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삼성에서 제공하는 내복상 하의를 입고 방진복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방진복 위에 식별띠라 불리는 업체명이 적힌 조끼를 입고, 어깨 쪽엔 이름표를 적어서 넣는다.

그리고 방진화를 입고 보안을 거쳐 입장하면 된다.



현재 임시스막 안에는 휴대폰 및 귀중품 보관용 라커가 있다. 예전엔 이런 시설물이 없어서 도둑들이 즐비했었다. 아직도 신발장엔 따로 라커가 없어서, 신발이 없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비싼 안전화를 구입하셨다면 자물쇠를 구매해서 신발 뒤꿈치 부분을 연결+체결이 필수다.





방진복을 입고, 안내해 주시는 분을 졸졸 따라 샵장에 도착했다.

샵장에 도착해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앉아도 된다'라는 것이었다.

방진 비닐이 깔려있는 곳은 앉아도 된다.

앉아도 된다니..

물산에서 일할 때는 하루 종일 서있는 것이 강제된다.

다리가 너무 아플 땐 몰래 눈치를 보다 몇 분 앉아있는 게 전부였는데..





신입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야 할 일을 기다렸다.

그때야 잘 몰랐지만, 우리는 4차 하청 업체를 통해 들어온 직원들이라

뭐랄까.. 별로 좋은 대우를 못 받은 것 같다.



3차 업체 팀장님은 직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쓸모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야 구분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대기를 하다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다.



점심은 형과 간단히 '행복한 한 끼'라는 함바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 당시에는 맛이 참 깔끔하고 좋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위에 추천도 하곤 했는데..

(최근 먹어본 평가는 평택 식당 리뷰를 참조해 주시길 바란다.)



식사 후 다시 샵장에 모였다.

첫 출근인 안전담당자들은 기존에 있던 안전담당자들과 짝을 이뤄 팀으로 이동했다.

(당시 초보 안전담당자분들 얘기로는 서류 등 매뉴얼이 딱 정해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조공들도 각자 팀에 배정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나만 빼고.



웬일인지 나는 그저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었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가 눈치가 보여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줍고 눈에 보이는 더러운 것 들을 치웠다.



덕분인지, 임시 공구장님께서 배관사가 배정될 때까지 자기 일을 도우라며 끌고 가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실 이 분은 2차사 사장님의 친누나였다.)



그 뒤 며칠인가를 공구장님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샵장을 정리하며 틈틈이 자재와 공구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양중을 하며 여러 팀장님들과도 인사를 트게 되었고, 안담 분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TIP. 인사를 잘 하라. 안전담당자에게 잘하라. 굽신 거리라는 게 아니다. 그냥 사회에서처럼 상식적으로 행동하라.)



샵장에서 대기하며 보낸 시간들 덕분에 (일을 하긴 한 건가..?),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고, 다음 회사로 이동할 때 이곳저곳 내게 맞는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골라서 이동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처음 배관사에게 배정을 받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배관사가 된지 얼마 안 되신 배관사 분이었는데(준기공)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게 엉망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스패너를 포함한 공구들과 자재들을 고소작업 중에 계속 떨어트렸다.

아마도 실적을 내야하기에 급한 마음에 일이 더 늦어지던게 아닌가 싶다.



또 환경안전이 바로 옆에 와있는데, 거의 다 했다며 불법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어 하던 환경안전 분의 얼굴이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조공과 안전담당자들은 점심시간을 한 시간쯤의 시간만 주고,

자신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이상 보내다 늦게 들어왔다.



그렇게 며칠 함께 일하다가,

같이 일하던 조공이 여태까지 이렇게 해왔으며, 배관사님 때문에 곧 이직을 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배관사님께 직접 불만을 얘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반장님, 죄송한데 저희 점심시간은 좀 맞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식사하고 돌아오기도 버겁습니다."



반응이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일을 배울 때는 밥도 안 먹고, 또 매일 30분 일찍 들어와서 30분 늦게 나갔다느니,

돈 벌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배우러 왔다고 생각하라느니..



난 돈 벌러 온 건데..



그리고 이후에 만난 배관사분들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모든 배관사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날 다른 배관사와 내 욕을 하는 걸 옷을 갈아입으며 듣게 되었다.

웃음이 났다.

그렇지 이곳은 상식적인 곳이 아니지.



물론 지금 되돌아보면,

배관사 입장에서는, 본인은 이번이 첫 배관사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며칠 되지도 않은 조공이 고개 뻣뻣이 들고 할 말하는 게 기분이 나빴으리라.



뭐 넘어가자.



그다음 날 나는 다시 샵장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다.



임시 공구장님은 좋은 배관사가 곧 들어올 거라며 일단 샵장일을 도우라고 하셨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그 당시에 샵장에서 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임시 공구장님은 정말 단 1분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땀을 흘릴 정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필요한 곳에 모두 찾아가서 도왔다.

예를 들어 10:00와 10:15분에 A반입구와 I반입구에 양중이 있다면, 두 곳에 내가 다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가기 전, 내가 살면서 이런 일을 또 겪을 수 있을까 싶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시트콤 같았다.





그리고 그 시트콤은 첫 번째 총괄 팀장이 회사를 떠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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