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게시판
2025.03.09 19:53
<KEYWORK> 지하실에서, 밑바닥으로
- 반노 오래 전 2025.03.09 19:53 KEY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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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망한 후, 방구석 히키코모리로 한 달을 숨어 살았다.
예전에 중고로 구매한 30만 원짜리 중고 컴퓨터로 하루의 반 이상을 게임으로 보냈다.
잠, 게임, 잠, 게임의 반복이었다.
20대 초부터 우울할 때마다 반복된 나의 현실도피 루틴이었다.
다만 20대 때와는 다르게, 30대의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더 가깝고 무거웠다.
우울증에 잠겨있기엔 억지로라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여러 조건들과 현실적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고정지출을 생각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노가다였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노가다’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내 편견들과 인식들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했다.
바닥보다 아래에 처박혀있던 주제에 우습게도 밑바닥을 올려다보며 창피해 한 것이다.
그리고 또 빚을 다 갚고 나면 3~5년. 40에 가까워졌을 나이에 아무것도 없을 내 미래가 눈에 선해 모든 걸 그냥 포기하고 싶어졌었다.
매주 로또를 맞춰보았다.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 이 지하실을,
밑바닥을 거치치 않고 빠져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결국에 나는 여러 감정들과 함께(정말 억지로) 건설 기초안전교육장으로 가게 되었다.
(현실이 등을 떠밀지 않았었다면 난 지금도 방에 숨어있지 않을까..)
교육이 끝나고 경력 많아 보이시는 아저씨 한 분이 강의실 앞에 올라와 명함을 나누어주셨다.
고덕 삼성에 좋은 팀들과 신규자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다며 단가와 조건들을 설명해 주고 가셨다.
당시 떠돌던 뉴스와 주변인들이 이야기해 줘서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는 걸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명함을 잘 챙겨두었다.
이수증을 받고 나서 일주일간 집을 정리하며 일자리를 찾아봤다.
그 어떤 곳도 삼성반도체 근무 환경만큼 안전하고 또 벌이가 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고덕이나 반도체 업종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 탐색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튜브도 몇 개 안 나왔고, 인터넷도 그럭저럭의 후기들 몇 줄뿐이었다.
’일이 그렇게 힘든진 않다‘, ’발이 많이 아프다‘, ’숙소가 불편하고 사람이 너무 많다‘, 등등의
정보가 주를 이뤘다.
다행히 추가적으로 처음 적응하기엔 ’화재감시자‘, ’안전감시자‘ 가 좋다는 것을 알았고 가장 피해야 할 직종으로 칸막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정보 찾기에 써놓고도 내가 처음 고덕에 와서 시작한 업종은 칸막이였다.
칸막이에(소위 ‘칸마귀’라고 불림) 대한 정보는 유튜브에 꽤 많이 있었으니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지만
처음 몇 달 만큼은 주급을 받아야 했던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도 같겠지만, 당시에 주급을 주는 업종은 칸막이와, 삼성 현장 내에서 존재하는 일용직 업종(현장 외부 펜스 설치 등을 하는 일로 알고 있다) 말고는 없었다.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고덕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겪은 일들을 적어볼까 한다..
매일 근무하는 와중에 짬 내서 글을 쓰다 보니 맥락이 잘 안 이어지고 끊기는 감이 있는 것 같다.
미숙한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그래도 혹시 이제 막 지하실에서 밑바닥으로 올라갈 용기를 내고 계신 분들께 부디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지금 돌아보면 이곳에 오기 전 느꼈던 막연한 감정들이 참 바보 같게 느껴진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크다.
아직도 여러 감정들로 주저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또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중고로 구매한 30만 원짜리 중고 컴퓨터로 하루의 반 이상을 게임으로 보냈다.
잠, 게임, 잠, 게임의 반복이었다.
20대 초부터 우울할 때마다 반복된 나의 현실도피 루틴이었다.
다만 20대 때와는 다르게, 30대의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더 가깝고 무거웠다.
우울증에 잠겨있기엔 억지로라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여러 조건들과 현실적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고정지출을 생각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노가다였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노가다’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내 편견들과 인식들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했다.
바닥보다 아래에 처박혀있던 주제에 우습게도 밑바닥을 올려다보며 창피해 한 것이다.
그리고 또 빚을 다 갚고 나면 3~5년. 40에 가까워졌을 나이에 아무것도 없을 내 미래가 눈에 선해 모든 걸 그냥 포기하고 싶어졌었다.
매주 로또를 맞춰보았다.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 이 지하실을,
밑바닥을 거치치 않고 빠져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결국에 나는 여러 감정들과 함께(정말 억지로) 건설 기초안전교육장으로 가게 되었다.
(현실이 등을 떠밀지 않았었다면 난 지금도 방에 숨어있지 않을까..)
교육이 끝나고 경력 많아 보이시는 아저씨 한 분이 강의실 앞에 올라와 명함을 나누어주셨다.
고덕 삼성에 좋은 팀들과 신규자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다며 단가와 조건들을 설명해 주고 가셨다.
당시 떠돌던 뉴스와 주변인들이 이야기해 줘서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는 걸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명함을 잘 챙겨두었다.
이수증을 받고 나서 일주일간 집을 정리하며 일자리를 찾아봤다.
그 어떤 곳도 삼성반도체 근무 환경만큼 안전하고 또 벌이가 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고덕이나 반도체 업종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 탐색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튜브도 몇 개 안 나왔고, 인터넷도 그럭저럭의 후기들 몇 줄뿐이었다.
’일이 그렇게 힘든진 않다‘, ’발이 많이 아프다‘, ’숙소가 불편하고 사람이 너무 많다‘, 등등의
정보가 주를 이뤘다.
다행히 추가적으로 처음 적응하기엔 ’화재감시자‘, ’안전감시자‘ 가 좋다는 것을 알았고 가장 피해야 할 직종으로 칸막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정보 찾기에 써놓고도 내가 처음 고덕에 와서 시작한 업종은 칸막이였다.
칸막이에(소위 ‘칸마귀’라고 불림) 대한 정보는 유튜브에 꽤 많이 있었으니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지만
처음 몇 달 만큼은 주급을 받아야 했던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도 같겠지만, 당시에 주급을 주는 업종은 칸막이와, 삼성 현장 내에서 존재하는 일용직 업종(현장 외부 펜스 설치 등을 하는 일로 알고 있다) 말고는 없었다.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고덕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겪은 일들을 적어볼까 한다..
매일 근무하는 와중에 짬 내서 글을 쓰다 보니 맥락이 잘 안 이어지고 끊기는 감이 있는 것 같다.
미숙한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그래도 혹시 이제 막 지하실에서 밑바닥으로 올라갈 용기를 내고 계신 분들께 부디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지금 돌아보면 이곳에 오기 전 느꼈던 막연한 감정들이 참 바보 같게 느껴진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크다.
아직도 여러 감정들로 주저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또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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