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게시판
2025.04.14 15:04
[KEYWORK] 새로운 시작
- 반노 7일 전 2025.04.14 15:04 KEY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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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시작이 언제나 두렵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이 두렵다.
이직이 강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했던 대부분의 강제적이었던 것들이 결론적으로는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사를 자주 했던 것조차 내 스트레스 감당 수치를 높여 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새로운 곳에서는 공무(공사사무)일을 할 예정이었다.
임시공구장님이 새로운 업체로 넘어가면서 내게 그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이직 전 회사에서도 공무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셨지만 거절했었다.
그땐 배관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중요한 것이 어쩌면 인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기술자를 기준으로, 그 사람이랑 친한 관리자는 그 사람이 잘한다고 평가하고
안 친한 관리자는 그 기술자를 못한다고 평가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압도적으로 잘하는 기술자는 안 친한 관리자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많은 돈을 받으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을 것은 당연지만,
그냥저냥 어느 정도 잘하는 기술자는 관리자들의 평가에 따라 저울질 당하기 일쑤다.
관리자의 기준이 원청으로 옮겨가면 더 하다.
원청 관리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쭉쭉 올라간다.
공사를 따고 큰돈을 버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원청 관리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관리자들이 많은 사무실에서 일하면 내가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무일을 하기로 결정했었다.
(아 솔직히 마음 한편에는 사무실에서는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있었다. 하하.)
아무튼, 이전에 일하던 업체가 새로운 총괄팀장님을 필두로 일을 진행하기 전에 나는 퇴사를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며칠간 쉬는 동안 또 이전처럼 대기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다행히도 공무일은 작업자들이 현장에 투입하기 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자들보다 빨리 출근하게 되었다.
공무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참 두려웠다.
얼핏 듣기로는 서류작업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하고, 조금의 실수에도 큰 책임이 따라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서류의 경우 글자 하나를 잘못 쓰는 것으로도 하루 동안 작업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첫 출근은 외부 공장/사무실로 하게 되었다.
날씨가 추웠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만큼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작을 하고 나니, 괜스레 처음 고덕에 왔던 날처럼,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가벼웠던 마음처럼 처음 한 일도 굉장히 가벼웠다.
새로 구매한 파일의 포장을 벗겨서, 속지를 링에 꽂는 일을 했다...
같이 출근했던 다른 작업자들은 매우 추운 날임에도 외부에서 사다리 안전보호 작업이나, 대차 제작 등에 투입되었지만
나는 공무였기때문에 사무실 일을 시켜주셨다.(+부장님이 되신 임시공구장님의 영향력)
물론 당시의 나는 까붐을 멈추지 않았을 때라, 사무실일이 끝나자마자 나가서 외부 일을 도왔다.
그때 같이 손을 후후 불며 사다리에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이던 동생과는 아직도 친하다.
공무의 일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한껏 마음이 즐거워졌을 때, 부장님(임시공구장님)께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따님분이 공무일을 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조공일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직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변수들을 겪어 왔던 터라, 별로 실망감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차라리 잘됐다 고생각도 했던 것 같다.
며칠간 외부 작업실로 출근하며, 내부에 들어갈 자재와 도구들을 준비했다.
출퇴근길에 차가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좀 불편했지만,
내가 이 회사의 시작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혼자만의 만족감이 더 컸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드디어 P3 내부로 출근하게 되었다.
익숙하게 내방카드를 받고, 첫 TBM을 하러 가는 발걸음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 회사의 부장님(사장님의 친누나)과 좋은 관계라는 생각에 왠지 어깨가 치솟아 올라갔다.
첫 TBM이 시작됐다.
처음 본 총괄팀장님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보다 총괄팀장이 어울릴 사람은 없었다.
진중한 목소리와 외모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작업자들을 위한다는 게 처음부터 느껴졌다. 좋은 회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장비 설치를 위한 도면이 없지만, 원청과 협의하에 작업자들 연장을 시켜줬다.
거의 몇 주 동안은 그저 샵장을 설치하고 필요한 안전장치들을 만들면서
작은 장비들을 치는 게 전부였다.
우리는 2차사였고 크게 직영팀, S가스팀, 그리고 벌크팀이 세 팀으로 회사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직영팀, S가스팀을 제외하고 난 각각 다른 반도체 현장에서 건너오신 분들이었다.
처음 느낀 것은, 배관사들의 성격이 각각의 현장마다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삼성에서 일하던 배관사들은 차분하고 물 같은 느낌,
하이닉스 일하던 배관사들은 빠르고 불같은 느낌,
LG에서 일하던 배관사들은 차분하고 얼음 같은 느낌.
개개인마다 분명 성향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내게 박힌 인상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현장의 업무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첫 한 달, 새로운 회사는 모든 게 잘 굴어가는 듯 보였다.
누구보다 총괄에 어울리는 총괄팀장을 필두로 각각의 다른 성향의 팀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장비를 설치할 채비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물론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삐걱거림은 곧 시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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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이 두렵다.
이직이 강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했던 대부분의 강제적이었던 것들이 결론적으로는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사를 자주 했던 것조차 내 스트레스 감당 수치를 높여 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새로운 곳에서는 공무(공사사무)일을 할 예정이었다.
임시공구장님이 새로운 업체로 넘어가면서 내게 그 일을 해달라고 요청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이직 전 회사에서도 공무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셨지만 거절했었다.
그땐 배관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중요한 것이 어쩌면 인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기술자를 기준으로, 그 사람이랑 친한 관리자는 그 사람이 잘한다고 평가하고
안 친한 관리자는 그 기술자를 못한다고 평가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압도적으로 잘하는 기술자는 안 친한 관리자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많은 돈을 받으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을 것은 당연지만,
그냥저냥 어느 정도 잘하는 기술자는 관리자들의 평가에 따라 저울질 당하기 일쑤다.
관리자의 기준이 원청으로 옮겨가면 더 하다.
원청 관리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쭉쭉 올라간다.
공사를 따고 큰돈을 버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원청 관리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관리자들이 많은 사무실에서 일하면 내가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무일을 하기로 결정했었다.
(아 솔직히 마음 한편에는 사무실에서는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있었다. 하하.)
아무튼, 이전에 일하던 업체가 새로운 총괄팀장님을 필두로 일을 진행하기 전에 나는 퇴사를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며칠간 쉬는 동안 또 이전처럼 대기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다행히도 공무일은 작업자들이 현장에 투입하기 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자들보다 빨리 출근하게 되었다.
공무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참 두려웠다.
얼핏 듣기로는 서류작업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하고, 조금의 실수에도 큰 책임이 따라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서류의 경우 글자 하나를 잘못 쓰는 것으로도 하루 동안 작업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첫 출근은 외부 공장/사무실로 하게 되었다.
날씨가 추웠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만큼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작을 하고 나니, 괜스레 처음 고덕에 왔던 날처럼,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가벼웠던 마음처럼 처음 한 일도 굉장히 가벼웠다.
새로 구매한 파일의 포장을 벗겨서, 속지를 링에 꽂는 일을 했다...
같이 출근했던 다른 작업자들은 매우 추운 날임에도 외부에서 사다리 안전보호 작업이나, 대차 제작 등에 투입되었지만
나는 공무였기때문에 사무실 일을 시켜주셨다.(+부장님이 되신 임시공구장님의 영향력)
물론 당시의 나는 까붐을 멈추지 않았을 때라, 사무실일이 끝나자마자 나가서 외부 일을 도왔다.
그때 같이 손을 후후 불며 사다리에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이던 동생과는 아직도 친하다.
공무의 일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한껏 마음이 즐거워졌을 때, 부장님(임시공구장님)께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따님분이 공무일을 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조공일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직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변수들을 겪어 왔던 터라, 별로 실망감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차라리 잘됐다 고생각도 했던 것 같다.
며칠간 외부 작업실로 출근하며, 내부에 들어갈 자재와 도구들을 준비했다.
출퇴근길에 차가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좀 불편했지만,
내가 이 회사의 시작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혼자만의 만족감이 더 컸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드디어 P3 내부로 출근하게 되었다.
익숙하게 내방카드를 받고, 첫 TBM을 하러 가는 발걸음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 회사의 부장님(사장님의 친누나)과 좋은 관계라는 생각에 왠지 어깨가 치솟아 올라갔다.
첫 TBM이 시작됐다.
처음 본 총괄팀장님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보다 총괄팀장이 어울릴 사람은 없었다.
진중한 목소리와 외모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작업자들을 위한다는 게 처음부터 느껴졌다. 좋은 회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장비 설치를 위한 도면이 없지만, 원청과 협의하에 작업자들 연장을 시켜줬다.
거의 몇 주 동안은 그저 샵장을 설치하고 필요한 안전장치들을 만들면서
작은 장비들을 치는 게 전부였다.
우리는 2차사였고 크게 직영팀, S가스팀, 그리고 벌크팀이 세 팀으로 회사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직영팀, S가스팀을 제외하고 난 각각 다른 반도체 현장에서 건너오신 분들이었다.
처음 느낀 것은, 배관사들의 성격이 각각의 현장마다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삼성에서 일하던 배관사들은 차분하고 물 같은 느낌,
하이닉스 일하던 배관사들은 빠르고 불같은 느낌,
LG에서 일하던 배관사들은 차분하고 얼음 같은 느낌.
개개인마다 분명 성향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내게 박힌 인상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현장의 업무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첫 한 달, 새로운 회사는 모든 게 잘 굴어가는 듯 보였다.
누구보다 총괄에 어울리는 총괄팀장을 필두로 각각의 다른 성향의 팀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장비를 설치할 채비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물론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삐걱거림은 곧 시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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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글이직, 선택, 결정.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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